제주 북촌리 환해장성 70m구간 펜션 업자 의해 훼손...문화재보호법 위반 경찰 조사중

원형 그대로 보존되면서 뛰어난 문화재적 가치를 자랑하던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 지역의 환해장성이 훼손된 채 발견됐다. 조사 결과, 인근 펜션 업주가 사적인 용도로 활용하기 위해 문화재를 무너뜨린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커질 전망이다.

30일 오전 찾은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 환해장성. 이 곳엔 약 260m의 현무암 성벽이 해안선을 따라 비경을 이루고 있었다.

'탐라만리장성', '고장성', '장성', '해안성담' 등으로도 불리는 환해장성은 옛 제주인들이 바다로 침입해 오는 적에 대비하기 위해 해안선을 따라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쌓은 구조물이다.

1653년 제주목사 이원진이 편찬한 <탐라지>에 환해장성 구축의 기록이 남아있는 등 문화재적 가치가 뛰어난 성으로, 지난 1998년 제주도기념물 제49호로 지정됐다.

이중 북촌리의 환해장성은 평균 높이 3~3.8m의 성벽이 잔존하고 있으며, 일부 구간에서는 4m 정도 성곽의 형태가 완전하게 남아있는 등 타 지역에 비해 비교적 보존이 잘 돼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또한 옛말이 됐다. 북촌리 환해장성의 약 70m 구간이 무너져 내리면서다. 성벽을 따라 동쪽으로 100m 정도 거닐다보면 현무암 성벽이 인위적으로 평평해진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훼손되기 이전까지 높게 쌓여져 있었던 성벽은 상부가 완전히 무너져 내려 두텁고 낮게 변했다.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높게 쌓아놓은 성벽이 누구나 쉽게 드나들 수 있도록 낮아진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지난 8월 제주문화예술재단이 파견한 문화재돌보미의 현장 답사에 의해 발견됐다. 문화재돌보미는 곧바로 관계부서인 제주도 세계자연유산본부에 알렸고, 제주도는 이를 경찰에 고발했다.

제주도자치경찰단 조사 결과 환해장성 훼손은 해당 구간과 맞닿은 펜션 업주인 A씨에 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성벽의 높이가 낮아지면서 자연스럽게 객실의 전망도 좋아지고, 관광객들이 공유수면을 쉽게 오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현재는 메워졌지만 펜션의 사유지를 넘어 일부 공유수면을 침범해 수영장까지 조성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 사실을 시인한 A씨는 현재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A씨는 문화재 훼손 여부를 모르고 있었느냐는 질문에 "얘기는 들었었는데 해석을 잘못했다. 외지에서 와서 그 내용을 잘 몰랐다. 물어보고 했어야 했다"며 "저 자신도 많이 괴로운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환해장성이 훼손됐다는 소식이 뒤늦게 퍼지자 마을은 발칵 뒤집혔다. 사법처리와는 별개로 훼손된 구간의 원상 복구는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윤인철 북촌리장은 "A씨에게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할 수 있을지 몰라도 엄청난 일을 저질렀다'고 얘기를 해놨다"며 "돌이란 것이 뒤집어져있으면 색깔도 달라지지 않나. 원상 복구는 가능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우려했다.

윤 이장은 "북촌리 환해장성은 타 지역과 달리 복원사업을 한게 아니라 당시 원형 그대로 남아있어서 더 각별한 문화재였다"며 "주민들이 당장 (훼손)당사자를 찾아가겠다는 걸 말리고 마을 회의를 소집할 예정이다. 10월 중순쯤 회의가 열릴 계획"이라고 말했다.